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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항/스토리텔링, 어떻게 할 것인가

서술자와 초점자에 대한 보충 설명

  지난번 스터디 시간에 거론되었던 제라르 주네트(Gérard Genette)의 '서술자(voice)'와 '초점자(focalizer)'는 기존의 서사이론이 가지고 있던 시점(point of view)의 한계를 극복하고 좀 더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 서사의 이행 주체들을 파악하기 위한 이론입니다. 현재 해당 이론이 언급된 그의 저서인 "Narrative Discourse"(1980)의 경우 한국에 정식 번역된 판본이 없기 때문에 국내에 그닥 알려져 있지 않은 이론이기도 합니다. 스터디 시간에 언급한대로 이 책을 쓴 최시한이라는 저자가 소설을 주네트의 이론을 가지고 분석하는 연구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마 스토리텔링을 설명하면서도 해당 이론을 가지고 온 듯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론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스토리텔링 작법서나 이론서에 주네트의 이론이 기본적으로 적용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네트의 이론은 서사를 만들어내는 창작방법론으로서가 아니라 분석하는데 좀 더 용이한 방법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토리텔링에 도움이 안되는 이론이냐고 하면 그건 아닙니다. 기존의 서사체계를 한계성을 지니고 있는 시점을 가지고 파악하는 것보다, 초점자와 서술자로 세분화하여 파악하면 작품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거나 비판하는데 유용합니다. 이른바 스토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 스토리벨류(story-value)에 대한 파악이 용이해 지는 것입니다. 서사를 파악하는데 용이한 방법론이고 만들어내는데는 그 쓰임이 제한적인 방법이니 스토리텔링 방법론에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론 자체를 명확하게 알아야 하는가에 대한 필요성은 다소간에 의문이 있지만 일단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좋으니 이 이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을 하겠습니다. 해당 스터디 일에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못한 것은 저의 부족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서 이렇게 말씀드린대로 보충설명을 글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야 하는 텍스트들에 대한 인지가 미흡해서 당시에 명확하게 설명 드리지 못한 것에 죄송합니다.


  일단 주네트의 서술자와 초점자는 후자인 초점자에 그 의미적 중요성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서술자는 기존의 시점 개념에서 이야기 하던, 시점의 주체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것을 파악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작품의 안에 서술자가 있는가(1인칭), 밖에 있는가(3인칭) 등에 따라서 시점을 나누고, 모든것들을 관할하면서 작품 전체의 이야기를 서술하는가(전지적작가), 관찰하면서 그것을 언급하는가(관찰자), 혹은 사건의 중심에서 주체적으로 그것을 이끄는가(주인공)에 따라 구분한 것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구분점을 보여줍니다. 문제는 초점자 입니다. 이전까지 없었던 개념을 새로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로의 이해를 요구하는 것이 초점자를 이해하는 것의 핵심입니다. 지난번 스터디때의 질문 사항을 대입해서 이야기 해보면 시점은 서술자와 초점자로 구성되어있다는 개념이 아니라, 시점의 개념을 서술자와 초점자의 개념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가 더 적확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엔 같은 말과 같이 보일지 몰라도 전자는 구성요소로서 반드시 파악해야 하는 요소로 접근하기 때문에 서술자와 초점자가 일치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강박적으로 찾아야 한다면, 후자는 작품 내에서 서술자와 초점자를 구분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라고 접근함으로서 기존의 시점 개념과의 논리적 연관성을 최대한 피한다는 이야깁니다. 세부개념이나 하부개념이 아니라 전혀 다른 맥락에서 작품내의 구성요소를 파악하겠다는 것이지요.


  초점자가 이 이론의 핵심이라고 했던 만큼 초점자에 대한 설명으로 집중해서 가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대략적으로 파악한 바 대로 초점자는 '보는 주체'를 의미합니다. 작품 내에서 어떤 인물이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는 것이 그 핵심입니다. 책에서 나온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의 본문을 다시 보면, "상욱은-"이라고 지칭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상욱이 보고 있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원장은-"이라고 언급된 부분이나, 그 원장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라고 언급하는 부분은 처음에 "상욱은-"이라고 언급했던 화자와는 다른 화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서술자와 초점자로 나누어서 설명해 보면, 처음에 "상욱은-"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서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인 상욱을 작품의 밖에서 작가(외적화자)가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품 내에서 사건을 이끌어가는 시각은 철저하게 상욱을 통해 얻어진 정보들에 의해서 진행됩니다. 원장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있고, 그의 행동들을 미루어 보건데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명백했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상욱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상욱이 원장을 관찰한 결과로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상욱의 초점자로서의 역할이 드러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서사분석 방법을 대입해 보면 이 작품은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욱은 전지적작가가 설정해 놓은 내부화자일 뿐이고, 서술자의 영역은 전적으로 작가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서술자는 작가와 일치되고, 상욱은 작품 내에서 움직이는 캐릭터 이상의 의미를 획득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주네트의 초점자이론을 대입해 보면 이 작품에서의 서술자는 작가라고 할 수 있지만 초점자는 상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책에서는 이렇게 서술자와 초점자가 분리되는 상황을 슈탄젤의 이론을 대입해서 인물적(시각) 서술상황이라고 분류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주네트의 이론 하나로만 끝내지 않고 슈탄젤의 이론을 가지고 와서 이론의 레퍼런스를 강화하고 결론 내린 것은 이 책이 철저하게 이론서로 쓰여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처음 입문을 하는 여러분께 이 책을 추천해 드린것 이기도 합니다. 다소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요.


  그리고 이렇게 서술자와 초점자가 분리되어 있는 텍스트들은 리얼리즘계의 소설보다는 모더니즘계열의 소설이나, 포스트 모너티즘 이후의 소설들, 그리고 장르문학에서 많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허구적인 세계가 강화될 수록 이러한 작품 내부의 인물들의 시각(그들의 사고와 제한된 판단)이 중요해 지기 때문입니다. 허구가 담보로 하고 있는 '그럴듯한 세계'를 그리기 위해서는 이것이 어느 특정한 상황에 처한 특정한 개인의 시각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설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최소한의 상식적인 룰을 지킨다면 '그럴 수 있겠다'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허구적인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할때 초점자의 역할을 좀 더 중요하게 됩니다. 초점자를 어떤 캐릭터로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작가가 설정할 수 있는 세계의 당위성이 조정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초점자의 특성 때문에 후반부에서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언급되는 것입니다.


  스터디 시간에 이야기 했던대로, 사랑손님과 어머니에서의 초점자는 옥희라는 '믿을 수 없는' 미취학 아동입니다. 그것도 그가 보고 있는 어른들의 세계를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혹은 매력이나 흥미요소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일종의 극적긴장감이 형성되고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문제에 이야깃거리를 부여할 수 있는것이 스토리텔링의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론의 하나로 초점자를 설정하고 그를 통해서 이야기를 색다른 관점에서 조망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다소간의 어려운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주네트의 초점자 이론이 언급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소결하자면, 주네트의 초점자 이론은 기존의 시점 개념과 연관지어서 생각을 하다보면 더 복잡해 집니다. (제가 이렇게 설명을 하려고 했다나 오히려 더 혼선을 드린 것 같습니다. 저의 부족함 입니다. 죄송합니다.) 기존의 시점 개념에서 구분하지 못하던 것들을 세분화하여, 그리고 더 다층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 나타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서술자와 초점자가 물론 동일하게 나타날 수도 있고, 분리되어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으며, 책에서 언급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나, 『압살롬, 압살롬!』과 같이 하나의 서술자가 있지만 각각의 초점자가 존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고로 옥히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초점자라는 것은 단지 '본다'라는 의미에서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다는 것은 사실 정보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인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체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사고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초점자는 작품을 보고 있는 일종의 시각이기도 합니다. 초점자로 설정된 인물의 성격이나 성향, 그리고 세계관에 따라서 작품 내에서 그려지는 세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초점자가 작가와 동일시 되어있는 작품들의 경우에는 초점자가 세계를 그리고 있는 방식을 보면서 작가가 작품을 통해서 의도하고자 했던 바들을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초점자와 서술자에 대한 좀 더 깊이있는 이해를 원하시는 분은 "최시한, 『소설, 어떻게 읽을 것인가』, 문학과지성사, 2010."을 참고하시면 될 듯 합니다. 해당 이론이 언급된 주네트의 책은 정식 번역된 것이 없고, 주네트의 이론에 대한 다른 역서는 절판되어서 현재 중고로 구입해야 하니까 말입니다.